정체성을 선택한다
link  호호아줌마   2024-07-10


서구 사회에서는 정체성, 성적 지향,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아이를 가질지 말지도 선택할 수 있다. 성형수술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젠더까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것이 우연적, 가변적이라면 우리 안의 무엇이 선택을 내린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과연 뭐가 되는 걸까?

한번은 법학 대학원생들과 정체성 선택을 주제로 토론한 적이 있었다. 그중 한 학생이 오늘날과 같은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자신은 수많은 정체성들을 완전히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다닌다고 고집스럽게 이야기했다.

심지어 그는 그것이 규칙에 대한 복종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정체성과 관련해 일상적으로 내리는 다양한 선택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예컨대, 사회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 준수할지는, 자신이 그때 일시적으로 어떤 정체성을 선택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침에 법률 사무소로 출근할 때는 공원 가장자리의 ‘출입금지’ 표지를 잘 지키는 반면, 오후에 퇴근해 청바지를 입고 있을 때는 대개 지키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또 자유 시간인 저녁에는 인터넷에서 각양각색의 정체성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를테면 무슬림인 체하며 무슬림 토론방에 참여할 수 있고, 때로는 게이인 척하며 게이 인터넷 사이트에 들락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여성이나 외국인인 체하는 것이다.

민족 정체성과 관련해서도 나는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영국에서 공부 중이던 젊은 인류학자 안누Annu 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가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가족은 원래 프랑스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부모도 만났다. 외모로 보건대 두 분 다 분명 인도인으로 보였다. 어머니는 큰 키에 검은 피부, 긴 검은 머리에 사리를 입고 있었다. 이마에는 결혼한 힌두 여성임을 나타내는 붉은 점 틸라크가 있었다. 아버지도 검은 머리여서 당연히 인도인으로 보였다. 두 분 모두 억양이 섞인 영어를 썼다.

나는 두 분이 캘거타에서 온 지 얼마 안됐다고도 했고, 거기 산다고 했기 때문에 , 그들이 분명 인도인이며 아마도 젊은 시절 잠깐 프랑스에 있었던 것이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부부가 인도인이 되기로 선택했다는 안누의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놀랐다.

두 분 모두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랐고 1970년대에 서구식 삶에 질려 인도로 이주했던 것이다. 인도에서 부부는 인도 문화와 생활양식을 받아들여 전통 의복을 입고 힌디어를 쓰고 현지인 가정들처럼 자녀를 길렀다.

이들은 서구 자본주의에서 탈출하긴 했지만, 선택이란 관념에 대한 서구적 사고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인도 사회에 동화된 것은 이주자 대부분의 경우와 같이 경제적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 매력적으로 다가온 생활양식을 선택하는 문제였다.

비록 정체성 선택이 처음에는 자기 창조라는 전적으로 자율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다른 많은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2004년에 영국의 텔레비젼 방송 의 우승자 중 한 명인 나디아 알마다는 자신이 트렌스젠더 여성임을 밝혔다. 그녀는 우승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여성으로 인정받네요.‘ 그녀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자신을 만들겠다는 꿈을 성취했고 이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디아 알마다는 자기 변신으로 자기 창조 관념을 체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텔레비젼 경쟁 프로그램에 참가했다는 사실과 사람들에게서 여성으로 인정받아 기뻐한 것을 돌아보면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유롭게 내린 선택들을 지지해 주는 타인들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레나타 살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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